비행기는 하늘에서 날고, 자동차는 육지에서 달리고, 배는 바다에서 운행하는 것은 당연하다. 해는 낮에 뜨고, 달은 밤에 뜨는 것과 다르지 않다. 솔개는 당연히 하늘을 날아야하고, 물고기는 당연히 물속에서 헤엄쳐야한다. 모든 존재는 각기 영역과 구실을 갖고 있다.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야 말하여 무엇하랴. 정치인은 선정으로 국리민복을, 예술가는 창작여마를 열심히 해서 명작을 내는 것이다. 또 학생의 본분은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고, 스승의 본분은 열심히 가르쳐야 한다.
물건은 품격을 갖춰야하고, 사람은 인격을 갖춰야 하는 것도 당연한 이치다. 요즘 자신에게 주어진 본분영역도 제대로 감당치 못하면서 남의 일에 참견하고 시비하는 사람들이 많다. 권력 등에 업고 도둑질하는 정치인들도 많고, 가르치기보다는 권력주변이나 두리번거리는 지식인들도 많다. 자비와 사랑을 가르치고 실천하는데 열심 하기보다는 엉뚱한 이념 선동에 앞장서 사회불안을 충동질하기에 열심 하느 탈선 종교인들도 있다. 아버지는 아버지다워야하고, 자식들은 자식들다워야 한다.
魚躍鳶飛(어약연비)이란 사자성어가 있다. 솔개는 하늘에서 날아야하고, 고기떼는 물속에서 노닐어야 당연하다는 의미다. 조물주의 섭리에 응당한 이치요 법칙이며, 만물에게 주어진 도(道)를 의미하는 말이다. 사람은 만물의 영장임을 자처하고 산다. 사리(事理)와 선악(善惡)을 판단할 줄 알기 때문이다. 종교인은 신앙의 영역에서, 교직자는 가르치는 영역에서, 또 정치인은 국리민복의 영역에서, 사람들마다 모두 각자가 지켜야할 길이 따로 있고, 사명이 따로 있다.
어떤 직업, 어떤 직종에 종사하든 지켜야 될 사명은 똑같이 성실과 열성이다. 분야마다 취미 따라 선택하고, 소질 따라 선택하고, 또 개성을 따라 선택하게 마련이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일을 맡아 주어진 본분영역에 충실하는 사람을 일러 흔히들 도리(道理)를 안다고 한다. 어느 철학자는 “사람 사는 것은 길을 가는 것과 같다”고도 했다. 사람마다의 삶은 정해진 일이 있고, 정해진 공간이 있다. 선택한 공간에서, 선택한 일에 최선의 노력을 다할 때 그게 바로 성공의 길이고 사는 도리다.
학자는 학자의 길을 가야하고, 기술자는 기술자의 길을 가야 한다. 남편은 남편의 도리가 있고, 아내는 아내의 도리가 있다. 한 사람이 두 길을 갈 수는 없다. 삶도 한 번 뿐이고 목숨도 하나 뿐이다. 솔개가 물속에서 살 수 없고, 물고기가 공중에서 살 수 없는 거나 똑같다. 자동차는 육지차도를 달려야하고, 비행기는 하늘에 항로를 날라야 한다. 자연의 섭리가 정해준 질서다. 우측으로 갈 때는 우측 깜빡이 켜고, 좌측으로 갈 땐 좌측 깜빡이를 키는 게 자동차가 차도를 달리는 운행질서다. 질서가 엉클어지면 세상은 종말이다.
낮에는 해가 뜨고, 밤에는 달이 뜨는 것은 우주의 질서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반복되는 것은 계절의 질서이며, 밤과 낮이 반복되고, 아침 점심 저녁이 반복되는 것은 하루의 질서다. 질서는 우주의 이치며, 존재의 조화다. 만물이 저마다 질서 따라 순리대로 살아가면 전체적으로 천지의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삶의 도(道)는 오묘하다.
“춘풍(春風)에 화만산(花滿山)하고/ 추야(秋夜)에 만월대(滿月臺)라/ 사시가흥(四時佳興)이 사람과 한가지라/ 하물며 魚躍鳶飛(어약연비) 운영천광(雲影天光)이야···”(봄바람으로 산에는 꽃이 가득하고, 가을 달빛 누각에 가득하니, 춘하추동 사계절의 멋은 사람들의 흥취와 같구나. 더구나 솔개는 하늘을 날고, 물에선 물고기들 노니나니, 흐르는 구름의 그림자, 밝은 햇빛 온 누리를 비춘다. 대자연의 아름다운 조화에 어찌 한도가 있을 소냐.) 퇴계선생이 노래한 유명한 도산십이곡 중 6번째 대자연의 이치에 대한 찬미의 구절이다.